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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학박사 정현석 칼럼
17-01-04 중독
1980년대 저는 농업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재학 중일 때 워낙 집안 형편이 어려웠습니다. 그 당시 6~7만원 하던 공납금(수업료 등)을 내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남들보다 2년 늦은 열아홉 살에 고등학교에 진학한 저는 공납금을 낼 형편이 되질 않아 공납금을 면제받는 대신에 학교 재배 포장에서 근무하는(일을 한다는 것이 맞는 표현임) 소위 ‘전공생’을 지원했습니다.
전공생이란 축산농장, 화훼, 채소?과수, 육가공, 농기계 분야 등 각 학과별 실습포장 관리, 실습 준비, 실제 재배 관리를 하는 학생들입니다.
저는 농고에 입학하자마자 화훼재배포장 전공생을 지원해 공납금의 90% 이상을 면제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학년 2학기부터는 거의 매일 재배포장에 나가 일했습니다. 재배 중인 각종 초화류나 국화 등의 분화류가 대량 출하되거나 바쁜 시기에는 워낙 일손이 부족하다보니 전공생들이 1개월 이상을 교실 수업을 불참하면서 재배포장에서 실습하며 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무슨 공부가 되었겠습니까? 가끔 교실에 들어가도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이 적응되지 않을뿐더러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점점 학교 공부와는 멀어지면서 나가서 뛰어놀고 활동적인 것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참 많이 했던 것이 축구였습니다. 농장에서 일이 끝나면 농장 전공생들끼리 매일같이 운동장에 모여서 줄기차게 공을 찼습니다. 비가 와서 운동장이 질척거려도, 온몸에 흙탕물이 튀어도 공을 찼습니다. 선생님들이 혀를 끌끌 찰 정도였으니까요. 그 뒤 졸업 후 대학에 가서도, 군 복무 중에도 기회만 되면 축구를 하곤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20대 후반 결혼을 하고 동네 조기 축구회에 가입하고 일주일에 두세 번씩 축구를 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사를 몇 번 했습니다. 성남 신혼생활에서 충북 음성으로, 그리고 몇 년 후 다시 대전 유성으로.
결혼 20여 년 동안 네댓 번 이사하면서 그 지역에 정착해 살 때마다 늘 축구회에 가입해 공을 열심히 찼습니다. 2006년 대전 유성으로 이사한 후 지금까지 여기서도 주말이면 어김없이 공을 찹니다. 그러고 보니 열아홉 농고 1학년 때부터 시작해 쉰한 살까지 삼십년 가까이 줄기차게 축구를 해온 셈입니다.
축구로 인해 많은 고통도 뒤따랐습니다. 무릎 수술 한 번, 다리 골절 두 번 등 부상으로 힘들었지만 가족들에게도 많은 염려를 끼쳤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도 매주 1~2회 몇 시간씩 축구를 합니다. 아내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저를 보며 중독이라고 합니다. 축구 중독!
저는 예전에는 중독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가졌습니다. ‘건강을 위한 취미 생활인데, 그것이 왜 중독이 되느냐고! 다들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중독이라는 것은 좋지 않은 것들이 중독이지 건강을 위해 하는 운동이 왜 중독인가요.! 도박, 게임, 마약, 알코올 등 이런 것들이 중독이지.’
그러나 저는 최근에 인정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축구! ‘그래, 이것도 중독이야’라고. 단지 술이나 마약, 도박처럼 자신의 삶과 사회의 기본 구성요소를 흔들어버리는 악한 중독과는 다른 건전한 중독이지만 어쨌든 중독은 중독이라고!
최근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소지하고 있습니다. 다양하고 편리한 기능 덕분에 우리의 삶이 여러모로 편리해졌습니다. 첨단의 기능과 다양한 정보 제공 덕분에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유용한 동반자가 된 것입니다.
지하철을 타보면 거의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특히 10~20대 젊은이들은 거의 대부분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들여다봅니다. 뿐만 아니라 길을 걸으면서, 심지어는 운전 중에도 수시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봅니다.
잠시라도 스마트폰과 떨어져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스마트폰을 소지하지 않게 되면 불안해 안절부절못합니다. 눈 뜨자마자 확인하고 잠결에서도 위치를 확인합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빠져 있는 시간에 주위는 의식되질 않습니다. 시간가는 줄도 모릅니다. 중독! 스마트폰 중독입니다.
요즘에는 서너 살 아이들도 부모들 휴대폰을 가지고 게임에 열중합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칭얼거리거나 귀찮게 굴어대니 아이들이 게임에 빠져 조용히 있는 편이 낫겠다 싶은 거죠. 그러다보니 네댓 살 어린 아이들마저도 게임중독에 빠져듭니다. 스마트폰게임, 인터넷게임, 닌텐도 등.
중독 중에서 인터넷게임 중독은 이미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된지 꽤 오래 되었습니다. 인터넷상으로 게임 중독의 피해사례에 대한 자료를 찾다보니 너무 많고 또한 너무 다양한 것에 놀랐습니다.
얼마 전 한 청소년이, 지나칠 정도로 컴퓨터 게임에 매달려 있는 나무라는 어머니를, 마구 때려 살해하고 집안에 방치한 채, 여전히 인터넷게임에 몰두한 사건이 일어나 우리 사회를 놀라게 했습니다.
인터넷게임 중독은 연령?성별 구분 없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습니다. 게임물 등급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3세 이상 아동부터 50~60대 장년층까지 인터넷게임을 이용하고 있으며 이 중 49%가 일주일에 7회 이상 혼자서 게임을 합니다. 실로 놀라운 일이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유아들의 게임 중독은 심각합니다. 유아들이 게임에 빠지면 뇌가 정상 발달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시각적 자극에만 집중하면서 후각?촉각 등 다른 처리 감각이 약해집니다. 어린 시절을 거쳐 청소년기에 인터넷게임에 뇌가 중독되면 일단 정상적인 뇌가 손상되어 중독 이전 상태로 돌아가기 어렵습니다. 현실에 무감각해지는 뇌 구조가 된다는 얘기입니다.
특히 싸움이나 폭력 등의 게임에 중독되면 뇌 구조가 단편적으로 발달하게 되는데, 파충류의 뇌 구조에 가까운 형태로 변해갑니다. 파충류의 뇌 구조는 공격과 방어의 개념만이 지배하는 뇌 구조로서 쉽게 흥분하며 공격적으로 돌변합니다. 사람이 크게 분노하거나 이성을 잃고 흥분할 때 뇌 검사를 해보면 감성과 사색을 하는 뇌세포의 구성보다는 공격적이며 흥분하는 세포질의 구조로 바뀌어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과도한 게임 후에는 그 잔영감이 뇌파 및 의식행동상에 계속 남아 있어 현실세계와 혼돈하여 잔인한 폭력 욕구가 일어나고 실제 행하기도 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합니다.
온라인게임 중독에 빠져 식음을 전폐하고 정신이 피폐하게 되어 감성적이며 이성적인 판단 능력이 제어되면 나중에 정신이상을 일으키는 등 무서운 결과가 초래됩니다. 특히 이 시대의 젊은 청춘들이 사색을 하기보다는 인터넷게임에 빠져 정신 영혼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은 정말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아무리 삶이 힘들고, 생이 고난 중에 있을지라도, 또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이 마음을 짓누를지라도 아무도 상대하지 않는 나 혼자만의 갇힌 공간에서 가상세계의 게임에 빠져 시간과 육체와 정신까지 피폐함으로 내던져져 있는 것은 두려움마저 일게 합니다.
더구나 그것이 일부 청소년들만의 것이라 할지라도 큰 문제일 텐데, 상당수의 이 시대 젊은 세대들이 여기에 빠져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크나큰 해결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검색보다는 사색을 하며 게임보다는 책을 가까이 하고 나 혼자만의 공간보다는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억지로라도 만들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아는 것처럼 지극히 사회적 동물입니다.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속에서 참다운 나를 발견하고 타인을 배려하며 살아가는 어울림을 배우며, 그래야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함께 어울리며 소통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타인 앞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며 부담스러워 합니다. 특히 낯선 사람을 만나고 대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때론 두렵습니다. 하지만 어렵고 두렵다고 피할 수만은 없습니다. 살아갈 미래가 많이 남아 있을수록 더욱 더 어울리며 소통해야 합니다.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 사람과의 관계입니다. 우리 인간은 서로와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할 피치 못할 숙명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인터넷게임 중독은 인간의 관계성을 무너뜨려버립니다. 폐쇄시켜버립니다. 혼자만의 세계로 깊이깊이 영혼을 가둡니다. 결국에는 소통이 없게 됩니다. 그리고 관계가 끊어지게 됩니다. 그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인터넷게임 중독은 이 시대의 젊은 청춘들이 기필코 깨뜨려야만 할 대상입니다.
톰 행크스가 주연한 라는 영화는 혼자된 인간의 고독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택배회사 직원인 주인공이 비행기 추락으로 무인도에 표류해 혼자만의 생활을 견뎌냅니다. 그러다가 굴러온 배구공에 이름을 지어주고 얼굴 모양을 그리며 마치 정말 사람인 것처럼 수많은 대화를 하면서 배구공과 함께 아무도 없는 무인도의 생활을 견딥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낡은 조각배를 타고 사람처럼 대하던 그 배구공과 함께 무인도를 탈출하게 됩니다. 그런데 거친 파도를 만나 표류하다가 그만 뱃전에 놓여 있는 낡은 사람, 아니 사람 배구공이 바다 위에 떠내려갑니다. 주인공은 진짜 사람이 떠내려가는 것처럼 절규하며 구하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점점 멀어져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주인공은 절규하며 안타까워합니다.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 감동적으로 그려진 영화라고 생각되어 집니다.
사회가 발달하고 인간의 문명이 고도화되는 과정 속에는 인간이 보다 더 풍요롭고 행복해지려는 목적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새로운 피폐한 부작용이 뒤따릅니다. 컴퓨터도 스마트폰도 사람이 편리하자고 만든 도구의 일부일 뿐인데 거기에 빠지거나 예속되고 중독이 되어버린다는 것은 주객이 전도되는 것뿐만 아니라 너무도 서글픈 일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시대에 따라 늘 다양한 형태의 중독으로 인해 사회적 문제가 야기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알코올, 도박, 사치, 향락, 본드, 스릴, 마약, 니코틴 등의 중독으로 인한 사회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중독들은 개인을 병들게 하는 것은 물론 가정이 깨어지고 사회까지 어지럽게 만듭니다.
사람은 누구나 재미를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삶 자체가 재미없으면 인공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자극을 만들어서라도 재미를 추구합니다. 특히 아이들은 늘 재미를 추구하며 성장합니다. 하지만 재미가 지나치면 어느새 그것에 중독되고 맙니다.
중독(Addiction)의 어원은 라틴어 ‘Addictus’입니다. 단어의 의미는 ‘몰두하다’, ‘헌신하다’입니다. 중독을 영적인 병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즉, 중독은 그 자체로 신앙적 종교성을 전제로 합니다. 그래서 중독에는 원초적인 아련함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많은 중독 중에서 차라리 긍정적인 중독에 빠지는 것은 어떨까요? 독서중독, 운동중독, 나눔 중독, 웃음중독, 친절중독, 사랑중독 등.
앞길이 구만리, 그야말로 청청한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세상과 단절해 혼자만의 세계로 끝없이 침잠한 채 게임에, 만화에, 그리고 ‘오타쿠’적인 중독에 빠져가는 것은 고통입니다.
인생은 누군가와 함께 가는 것이며, 결코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것이라고. 또한 나 자신은 절대 혼자가 아니라고. 가장 슬픈 인생은 ‘인생은 혼자이다. 따라서 나 혼자 의지를 가지고 극복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에는 그리움의 DNA가 있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싫어서 인간이 없는 산으로 가지만, 다시 인간이 그리워 세상으로 내려오기도 합니다. 사람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것이 삶입니다.
우리의 젊은이 들이 혼자만의 게임에 빠져서 혼자만의 폐쇄된 삶 속에서 나오려 하지 않고 주위와 세상과 단절한 채 지낸다면 너무나 안타깝지요.
또는 알콜 중독으로 가정의 평화가 깨지고 삶이 풍비박살이 난 경우도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습니다.
순간의 즐거움과 쾌락이 있더라도 나를 망가뜨리고 내 가족을 그리고 내 주변을 황폐화시키는 것은 과감히 떨쳐내야 합니다. 무심코 흘려버리는 작은 버릇들이 씨앗이 되어 반복이 되며 그것이 나도 모르게 중독이 됩니다.
일상의 삶을 담백하게 그리고 맑게 사는 마음 가짐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시절인 것 같습니다.
전공생이란 축산농장, 화훼, 채소?과수, 육가공, 농기계 분야 등 각 학과별 실습포장 관리, 실습 준비, 실제 재배 관리를 하는 학생들입니다.
저는 농고에 입학하자마자 화훼재배포장 전공생을 지원해 공납금의 90% 이상을 면제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학년 2학기부터는 거의 매일 재배포장에 나가 일했습니다. 재배 중인 각종 초화류나 국화 등의 분화류가 대량 출하되거나 바쁜 시기에는 워낙 일손이 부족하다보니 전공생들이 1개월 이상을 교실 수업을 불참하면서 재배포장에서 실습하며 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무슨 공부가 되었겠습니까? 가끔 교실에 들어가도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이 적응되지 않을뿐더러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점점 학교 공부와는 멀어지면서 나가서 뛰어놀고 활동적인 것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참 많이 했던 것이 축구였습니다. 농장에서 일이 끝나면 농장 전공생들끼리 매일같이 운동장에 모여서 줄기차게 공을 찼습니다. 비가 와서 운동장이 질척거려도, 온몸에 흙탕물이 튀어도 공을 찼습니다. 선생님들이 혀를 끌끌 찰 정도였으니까요. 그 뒤 졸업 후 대학에 가서도, 군 복무 중에도 기회만 되면 축구를 하곤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20대 후반 결혼을 하고 동네 조기 축구회에 가입하고 일주일에 두세 번씩 축구를 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사를 몇 번 했습니다. 성남 신혼생활에서 충북 음성으로, 그리고 몇 년 후 다시 대전 유성으로.
결혼 20여 년 동안 네댓 번 이사하면서 그 지역에 정착해 살 때마다 늘 축구회에 가입해 공을 열심히 찼습니다. 2006년 대전 유성으로 이사한 후 지금까지 여기서도 주말이면 어김없이 공을 찹니다. 그러고 보니 열아홉 농고 1학년 때부터 시작해 쉰한 살까지 삼십년 가까이 줄기차게 축구를 해온 셈입니다.
축구로 인해 많은 고통도 뒤따랐습니다. 무릎 수술 한 번, 다리 골절 두 번 등 부상으로 힘들었지만 가족들에게도 많은 염려를 끼쳤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도 매주 1~2회 몇 시간씩 축구를 합니다. 아내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저를 보며 중독이라고 합니다. 축구 중독!
저는 예전에는 중독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가졌습니다. ‘건강을 위한 취미 생활인데, 그것이 왜 중독이 되느냐고! 다들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중독이라는 것은 좋지 않은 것들이 중독이지 건강을 위해 하는 운동이 왜 중독인가요.! 도박, 게임, 마약, 알코올 등 이런 것들이 중독이지.’
그러나 저는 최근에 인정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축구! ‘그래, 이것도 중독이야’라고. 단지 술이나 마약, 도박처럼 자신의 삶과 사회의 기본 구성요소를 흔들어버리는 악한 중독과는 다른 건전한 중독이지만 어쨌든 중독은 중독이라고!
최근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소지하고 있습니다. 다양하고 편리한 기능 덕분에 우리의 삶이 여러모로 편리해졌습니다. 첨단의 기능과 다양한 정보 제공 덕분에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유용한 동반자가 된 것입니다.
지하철을 타보면 거의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특히 10~20대 젊은이들은 거의 대부분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들여다봅니다. 뿐만 아니라 길을 걸으면서, 심지어는 운전 중에도 수시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봅니다.
잠시라도 스마트폰과 떨어져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스마트폰을 소지하지 않게 되면 불안해 안절부절못합니다. 눈 뜨자마자 확인하고 잠결에서도 위치를 확인합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빠져 있는 시간에 주위는 의식되질 않습니다. 시간가는 줄도 모릅니다. 중독! 스마트폰 중독입니다.
요즘에는 서너 살 아이들도 부모들 휴대폰을 가지고 게임에 열중합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칭얼거리거나 귀찮게 굴어대니 아이들이 게임에 빠져 조용히 있는 편이 낫겠다 싶은 거죠. 그러다보니 네댓 살 어린 아이들마저도 게임중독에 빠져듭니다. 스마트폰게임, 인터넷게임, 닌텐도 등.
중독 중에서 인터넷게임 중독은 이미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된지 꽤 오래 되었습니다. 인터넷상으로 게임 중독의 피해사례에 대한 자료를 찾다보니 너무 많고 또한 너무 다양한 것에 놀랐습니다.
얼마 전 한 청소년이, 지나칠 정도로 컴퓨터 게임에 매달려 있는 나무라는 어머니를, 마구 때려 살해하고 집안에 방치한 채, 여전히 인터넷게임에 몰두한 사건이 일어나 우리 사회를 놀라게 했습니다.
인터넷게임 중독은 연령?성별 구분 없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습니다. 게임물 등급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3세 이상 아동부터 50~60대 장년층까지 인터넷게임을 이용하고 있으며 이 중 49%가 일주일에 7회 이상 혼자서 게임을 합니다. 실로 놀라운 일이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유아들의 게임 중독은 심각합니다. 유아들이 게임에 빠지면 뇌가 정상 발달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시각적 자극에만 집중하면서 후각?촉각 등 다른 처리 감각이 약해집니다. 어린 시절을 거쳐 청소년기에 인터넷게임에 뇌가 중독되면 일단 정상적인 뇌가 손상되어 중독 이전 상태로 돌아가기 어렵습니다. 현실에 무감각해지는 뇌 구조가 된다는 얘기입니다.
특히 싸움이나 폭력 등의 게임에 중독되면 뇌 구조가 단편적으로 발달하게 되는데, 파충류의 뇌 구조에 가까운 형태로 변해갑니다. 파충류의 뇌 구조는 공격과 방어의 개념만이 지배하는 뇌 구조로서 쉽게 흥분하며 공격적으로 돌변합니다. 사람이 크게 분노하거나 이성을 잃고 흥분할 때 뇌 검사를 해보면 감성과 사색을 하는 뇌세포의 구성보다는 공격적이며 흥분하는 세포질의 구조로 바뀌어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과도한 게임 후에는 그 잔영감이 뇌파 및 의식행동상에 계속 남아 있어 현실세계와 혼돈하여 잔인한 폭력 욕구가 일어나고 실제 행하기도 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합니다.
온라인게임 중독에 빠져 식음을 전폐하고 정신이 피폐하게 되어 감성적이며 이성적인 판단 능력이 제어되면 나중에 정신이상을 일으키는 등 무서운 결과가 초래됩니다. 특히 이 시대의 젊은 청춘들이 사색을 하기보다는 인터넷게임에 빠져 정신 영혼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은 정말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아무리 삶이 힘들고, 생이 고난 중에 있을지라도, 또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이 마음을 짓누를지라도 아무도 상대하지 않는 나 혼자만의 갇힌 공간에서 가상세계의 게임에 빠져 시간과 육체와 정신까지 피폐함으로 내던져져 있는 것은 두려움마저 일게 합니다.
더구나 그것이 일부 청소년들만의 것이라 할지라도 큰 문제일 텐데, 상당수의 이 시대 젊은 세대들이 여기에 빠져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크나큰 해결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검색보다는 사색을 하며 게임보다는 책을 가까이 하고 나 혼자만의 공간보다는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억지로라도 만들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아는 것처럼 지극히 사회적 동물입니다.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속에서 참다운 나를 발견하고 타인을 배려하며 살아가는 어울림을 배우며, 그래야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함께 어울리며 소통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타인 앞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며 부담스러워 합니다. 특히 낯선 사람을 만나고 대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때론 두렵습니다. 하지만 어렵고 두렵다고 피할 수만은 없습니다. 살아갈 미래가 많이 남아 있을수록 더욱 더 어울리며 소통해야 합니다.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 사람과의 관계입니다. 우리 인간은 서로와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할 피치 못할 숙명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인터넷게임 중독은 인간의 관계성을 무너뜨려버립니다. 폐쇄시켜버립니다. 혼자만의 세계로 깊이깊이 영혼을 가둡니다. 결국에는 소통이 없게 됩니다. 그리고 관계가 끊어지게 됩니다. 그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인터넷게임 중독은 이 시대의 젊은 청춘들이 기필코 깨뜨려야만 할 대상입니다.
톰 행크스가 주연한 라는 영화는 혼자된 인간의 고독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택배회사 직원인 주인공이 비행기 추락으로 무인도에 표류해 혼자만의 생활을 견뎌냅니다. 그러다가 굴러온 배구공에 이름을 지어주고 얼굴 모양을 그리며 마치 정말 사람인 것처럼 수많은 대화를 하면서 배구공과 함께 아무도 없는 무인도의 생활을 견딥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낡은 조각배를 타고 사람처럼 대하던 그 배구공과 함께 무인도를 탈출하게 됩니다. 그런데 거친 파도를 만나 표류하다가 그만 뱃전에 놓여 있는 낡은 사람, 아니 사람 배구공이 바다 위에 떠내려갑니다. 주인공은 진짜 사람이 떠내려가는 것처럼 절규하며 구하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점점 멀어져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주인공은 절규하며 안타까워합니다.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 감동적으로 그려진 영화라고 생각되어 집니다.
사회가 발달하고 인간의 문명이 고도화되는 과정 속에는 인간이 보다 더 풍요롭고 행복해지려는 목적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새로운 피폐한 부작용이 뒤따릅니다. 컴퓨터도 스마트폰도 사람이 편리하자고 만든 도구의 일부일 뿐인데 거기에 빠지거나 예속되고 중독이 되어버린다는 것은 주객이 전도되는 것뿐만 아니라 너무도 서글픈 일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시대에 따라 늘 다양한 형태의 중독으로 인해 사회적 문제가 야기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알코올, 도박, 사치, 향락, 본드, 스릴, 마약, 니코틴 등의 중독으로 인한 사회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중독들은 개인을 병들게 하는 것은 물론 가정이 깨어지고 사회까지 어지럽게 만듭니다.
사람은 누구나 재미를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삶 자체가 재미없으면 인공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자극을 만들어서라도 재미를 추구합니다. 특히 아이들은 늘 재미를 추구하며 성장합니다. 하지만 재미가 지나치면 어느새 그것에 중독되고 맙니다.
중독(Addiction)의 어원은 라틴어 ‘Addictus’입니다. 단어의 의미는 ‘몰두하다’, ‘헌신하다’입니다. 중독을 영적인 병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즉, 중독은 그 자체로 신앙적 종교성을 전제로 합니다. 그래서 중독에는 원초적인 아련함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많은 중독 중에서 차라리 긍정적인 중독에 빠지는 것은 어떨까요? 독서중독, 운동중독, 나눔 중독, 웃음중독, 친절중독, 사랑중독 등.
앞길이 구만리, 그야말로 청청한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세상과 단절해 혼자만의 세계로 끝없이 침잠한 채 게임에, 만화에, 그리고 ‘오타쿠’적인 중독에 빠져가는 것은 고통입니다.
인생은 누군가와 함께 가는 것이며, 결코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것이라고. 또한 나 자신은 절대 혼자가 아니라고. 가장 슬픈 인생은 ‘인생은 혼자이다. 따라서 나 혼자 의지를 가지고 극복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에는 그리움의 DNA가 있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싫어서 인간이 없는 산으로 가지만, 다시 인간이 그리워 세상으로 내려오기도 합니다. 사람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것이 삶입니다.
우리의 젊은이 들이 혼자만의 게임에 빠져서 혼자만의 폐쇄된 삶 속에서 나오려 하지 않고 주위와 세상과 단절한 채 지낸다면 너무나 안타깝지요.
또는 알콜 중독으로 가정의 평화가 깨지고 삶이 풍비박살이 난 경우도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습니다.
순간의 즐거움과 쾌락이 있더라도 나를 망가뜨리고 내 가족을 그리고 내 주변을 황폐화시키는 것은 과감히 떨쳐내야 합니다. 무심코 흘려버리는 작은 버릇들이 씨앗이 되어 반복이 되며 그것이 나도 모르게 중독이 됩니다.
일상의 삶을 담백하게 그리고 맑게 사는 마음 가짐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시절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