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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학박사 정현석 칼럼
17-01-04 본질
공무원은 국가 또는 지방공공단체의 업무를 맡아보는 사람들 즉, 국민들이 내는 세금으로 보편 타당적이고 국민들의 편의와 정당성 그리고 국가유지를 위한 국민들을 대신하여 일반국민들의 그 모든 것을 실행하는 사람들입니다.
국회의원(일반의원들도 포함하여)은 각 지역 국민들을 대신(대표)하여 다시 말하자면 국민들로부터 그 대표성을 위임받아 보편타당한 국가와 국민들의 편의를 위한 기본적인 법을 제정하고 그에 따른 역할 그리고 행정부의 예산, 결산등을 감시 확인하고 행정부의 역할을 국민들을 대신하여 관리 감독 견제하는 것이 국회가 해야할 일입니다.
그것이 공무원이 가지고 있는 다시 말하자면 공무원의, 그리고 국회의 존재의 본질일 것입니다.
농협이라는 조직은 그 조합의 구성원인 각 농협의 농민 조합원들이 주인입니다. 그것이 농협의 본질입니다. 군대와 군인이 존재하 는것은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안정 국토방위의 임무를 갖고 있는 것이 또한 군대, 군인 존재의 본질입니다. 우리사회에는 수많은 조직과 단체 그리고 개인들의 역할과 존재의 이유가 각각 있습니다.
교사는 교사대로 목회자는 목회자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각자 개인들의 처한 현실과 직업, 그리고 잠시라도 하는것들에 대해서는 모두다 목적과 본질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사회는 그 가지고 있는 각각의 본질을 과연 제대로 의식하고 있는지 그본질을, 진정한 본질의 뜻대로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정말로 되돌아볼 시대입니다.그 본질과 주제가 흐려지고 때론 주제넘은 방종과 행위를 나무나 뻔뻔스럽게 저지르면서 그것이 본질인양 큰소리치며 떵떵거리는 조직과 개인이 사회전반에 너무나 만연되어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본질이란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사물 자체의 성질이나 모습. 사물이나 현상을 성립시키는 근본적인 성질. 철학적의미로는 실존에 상대되는 말로, 어떤 존재에 관한 그 무엇이라고 정의 될 수 있는 성질’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것을 본질의 정의, 진실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사회의 이러한 본질. 즉 원초적인 정의와 진실은 어디에 있는걸까요?
작은 조직이나 모임이라도 그것을 대표하거나 또는 정치적으로는 국민을 대표한다는 것의 본질은 그 조직을 대표하여 군림하고 누리고 즐기라는 것이 아니라 그 조직을 대표하여 최선의 보편타당적인 편리와 이익 그리고 정의의 진실을 추구하여야 하는, 누구보다도 대표로서 더한 노력과 희생으로 그 대표성을 가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대표들이 조직이나 국민들위에 더 권력화하고 군림하고 조직원과 국민들을 희생시키고 피해를 끼치는 행위들을 스스럼없이 저지르는 본질이 왜곡되고 처참히 짓밟히는 사례가 부지기수입니다.
정치, 종교, 예술, 경제, 산업 등등 사회전반에서 각각 가지는 그 본질이 무너지고 깨어지면 결국 정의와 진실, 도덕은 우리 사회에 점점 사라지고 말게 됩니다.
교사의 본질은 올바른 가르침이고 목회자의 본질은 영성 있는 신앙의 전도자요 정치인은 국민을 위해 희생하여 봉사하는 것이 본질이요. 공무원은 국민의 손과 발이 되는 것이 본질이요. 경제인은 기업가치를 통한 개인의 부와 사회적 활성을 만드는 것이 본질이요. 근로자는 주어진 근로에 최선을 다하여 일하는 것이 본질이요. 의사는 최선으로 환자를 치유하는 것이 본질이요. 군인은 나라를 지키는 것이 본질이며축구선수는 축구를 잘하는 것이 우선 본질이요..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본질이요. 농부는 농사를 잘 짓는 것이 본질이요. 어부는 물고기를 잘잡는 것이 본질입니다. 지금 주어져 있는 내 책임과 의무에 정당하게 부끄럼 없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의 본질입니다.
바보가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전혀 할 줄 모르고 신경쓰지 마라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본질이 왜곡되어 가고 변질되어 가는데 그것이 본질이라고 믿고 있고 주장하며 그리고 왜곡되어 부패되어 썩어가는 줄도 모르고 정당화 하고 그리고 그런 것이 고착화 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영성 있는 설교와 기도보다는 현란한 프로그램 만들기에 급급하고 기업인이 깊이 있는 제품개발보다는 삼류 장사치 보다도 못한 상술로 돈벌이에 급급하고, 정치인들은 국민들 위에 군림 하여 국민을 업신여기고 권력을 누리고, 자신의 명예욕, 출세욕에 나라의 안위와 국가의 안전을 헌신짝처럼 패댕기 치고, 공무원들을 권위의식과 기득권 이기주의로 자신의 밥그릇 챙기기에 혈안이고, 비정규직 보호를 부르짓으며 정작 자신들의 배부른 밥그릇은 철밥통으로 지키는 기득권의 대기업 공기업 귀족노조들, 어린학생들 수백명이 죽어가도 내 자식이 아니라고 놀러가다 죽은 아이들 국민 세금으로 무슨 보상금이냐고 악플을 스스럼 없이 올리는 익명의 대다수들 등등,,,, 우리의 삶의 본질을 벗어나고 벗어난 본질을 다시금 합리화 시켜 새로운 본질로 만들어 가는 우리사회의 수많은 사례와 현상들이 지금 이시대병든 서글픈 우리의 자화상일지도 모릅니다.
가마솥에 미지근한 물에 개구리를 넣어두면 평안히 헤엄치며 유유자적 합니다. 그리고 서서히 불을 지펴서 물 온도를 높혀도 개구리는 그저 편안하니 즐겁게 노닙니다. 그러다 시간을 두고 서서히 물 온도가 높아지면 거기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결국에는 삶아 죽습니다.
가마솥의 개구리가 유유자적 즐기고 있지만 결극은 그 가마솥에서 삶다 죽어가는 것이 본질입니다. 단지 가마솥의 개구리는 그 본질을 부정하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거기서 나와라 그러다 나중에 삶아죽는다” 하면 “아 이렇게 미지근 하고 따뜻하니 좋은데 왜 나오라고 하는거야!” 개구리는 펄쩍 뛰고 성을 냅니다.
우리 사회가 지금 그렇습니다.
앞서 말한 본질과 정의를 언급하면 길길이 날뜁니다. 누군가는 목회자에 대적한다 하며 극렬히 저주합니다. 어떤 단체들은 서울광장, 여의도를 대규모로 점령하여 붉은띠 깃발을 휘두르고 나라를 뒤집을 듯이 자신들의 극단적 이기심을 위하여 단체행동을 합니다. 철도를 멈추고 심지어 학교,병원을 닫아버리기도 합니다.
절대적 부패는 누구나 압니다. 갑자기 뜨거운 물에는 개구리도 절대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미지근한 곳에 따스한 곳에 들어가있는것은 곧 이어서 뜨거움이 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잘 모릅니다. 아니 알면서도 애써 외면 해버립니다.
나의 희생이 있어서 우리의 희생이 있고 그리고 사회의 아름다운 희생이 있습니다. 나의 양보가 있어서 우리의 양보가 있고 우리 사회의 양보의 미덕이 있습니다. 나의 솔선수범과 배려가 있어 우리의 솔선수범과 배려가 있고 우리 사회에 남에 대한 솔선수범 배려가 번집니다. 사람의 삶에서 이것이 본질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만의 아름다움입니다.
너는 양보해라 나는 못한다. 너네는 가라 우리는 못간다. 너네는 대한민국 사랑해라 우리는 원정 출산가서 우리손주 미국 시민권 얻을 란다. 네 자식은 군대보내라 난 아들 불쌍하고 시간이 아까워 군대 빼련다. 너네는 밑바닥 생활해라 우리는 상류층 하련다. 너희 비정규직 한달 100만원 벌어 살어라 우린 연봉 1억인데 더 받을란다. 너희 공휴일 일해라 우린 주5일근무에 월차,연차,각종 수당이란 수당 다 받고 모든 공휴일 거기에 각종 창립일 등등, 다 쉬련다. 당신들은 쌀 한가마니 12만원 받아라 우린 고급 수입농산물 먹으련다....
사회 전반에 썩은 본질을 두고 부끄러워 하거나 돌아보기는커녕 그 썩어가는 것이 진짜 본질인줄 제대로 착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곧이어 뜨거워져가는 솥단지 안에서 좋다고 날뛰는 개구리가 남의 일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우리사회에 올바른 가치관과 사람다운 도덕관점 그리고 진실된 본질이 그득히 흐르는 시대가 와야 됩니다. 탐욕대신에 양보가 중오대신에 사랑이. 이기심 대신에 큰 배려가, 몰염치한 것보다는 염치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심을 잃지 않는 진실된 보편타당적인 가치관들이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 잡아야 됩니다. 부끄러운 것을 부끄러운줄 알고, 탐욕을 탐욕으로 앎으로써 큰 죄의식을 느끼고, 나 하나의 내 조직의 극단적 이기심 보다 그 조직과 사회적 본질을 제대로 깨닳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것이 없는 사회, 그런 흐름이 없는 세상은 사람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강점기, 6.25전쟁 한민족사에 있어서 수많은 양민이 찔려 죽이고 침탈자들에 의해 수많은 젊은 부녀자들이 강간살육 당하고, 심지어 국가 왕비가 학살 강간당하는등, 나라와 민족이 숱하게 갈기 갈기 찢기고 망한 것이 지난 우리 역사의 교훈입니다. 그 한 맺힌 피눈물의 역사가 뼈저리게 그것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와중에도 호위호식하며 인간말종의 모습의 살아온 인간들도 많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합리화 시켜 또 다른 본질로 왜곡 시켰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올바른 가치관의 본질을 되찾지 못하면 그 혹독한 역사의 아픔이 가마솥에서 서서히 삶아 죽어가는 개구리 같이 또다시 되풀이 될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식들 그리고 미래의 자손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물려 주어야 하는지요?
우리가 참다운 본질을 잃어버리고 이기심과 분열만을 일삼는 다면 우리는 아마도 지금까지 겪었던 그 무엇보다도 훨씬 더 비참한 역사를 만들지도 모릅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 볼일입니다. 사회전반에 깔려있는 갈등과 이기심은 그 본질을 버리고 외면한 대가입니다.
올바른 삶을 위해, 그리고 밝고 맑은 참다운 사회와 나라를 위해, 정말 사람 살만한 사회, 차라리 경제적 풍요는 덜 할지라도 정신과 육체가 맑고 건강한 세상을 풍요로운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어가기 위하여 지금 부터라도 참다운 본질을 작은 것 하나 하나 부터 되새겨 볼일입니다.
국회의원(일반의원들도 포함하여)은 각 지역 국민들을 대신(대표)하여 다시 말하자면 국민들로부터 그 대표성을 위임받아 보편타당한 국가와 국민들의 편의를 위한 기본적인 법을 제정하고 그에 따른 역할 그리고 행정부의 예산, 결산등을 감시 확인하고 행정부의 역할을 국민들을 대신하여 관리 감독 견제하는 것이 국회가 해야할 일입니다.
그것이 공무원이 가지고 있는 다시 말하자면 공무원의, 그리고 국회의 존재의 본질일 것입니다.
농협이라는 조직은 그 조합의 구성원인 각 농협의 농민 조합원들이 주인입니다. 그것이 농협의 본질입니다. 군대와 군인이 존재하 는것은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안정 국토방위의 임무를 갖고 있는 것이 또한 군대, 군인 존재의 본질입니다. 우리사회에는 수많은 조직과 단체 그리고 개인들의 역할과 존재의 이유가 각각 있습니다.
교사는 교사대로 목회자는 목회자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각자 개인들의 처한 현실과 직업, 그리고 잠시라도 하는것들에 대해서는 모두다 목적과 본질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사회는 그 가지고 있는 각각의 본질을 과연 제대로 의식하고 있는지 그본질을, 진정한 본질의 뜻대로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정말로 되돌아볼 시대입니다.그 본질과 주제가 흐려지고 때론 주제넘은 방종과 행위를 나무나 뻔뻔스럽게 저지르면서 그것이 본질인양 큰소리치며 떵떵거리는 조직과 개인이 사회전반에 너무나 만연되어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본질이란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사물 자체의 성질이나 모습. 사물이나 현상을 성립시키는 근본적인 성질. 철학적의미로는 실존에 상대되는 말로, 어떤 존재에 관한 그 무엇이라고 정의 될 수 있는 성질’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것을 본질의 정의, 진실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사회의 이러한 본질. 즉 원초적인 정의와 진실은 어디에 있는걸까요?
작은 조직이나 모임이라도 그것을 대표하거나 또는 정치적으로는 국민을 대표한다는 것의 본질은 그 조직을 대표하여 군림하고 누리고 즐기라는 것이 아니라 그 조직을 대표하여 최선의 보편타당적인 편리와 이익 그리고 정의의 진실을 추구하여야 하는, 누구보다도 대표로서 더한 노력과 희생으로 그 대표성을 가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대표들이 조직이나 국민들위에 더 권력화하고 군림하고 조직원과 국민들을 희생시키고 피해를 끼치는 행위들을 스스럼없이 저지르는 본질이 왜곡되고 처참히 짓밟히는 사례가 부지기수입니다.
정치, 종교, 예술, 경제, 산업 등등 사회전반에서 각각 가지는 그 본질이 무너지고 깨어지면 결국 정의와 진실, 도덕은 우리 사회에 점점 사라지고 말게 됩니다.
교사의 본질은 올바른 가르침이고 목회자의 본질은 영성 있는 신앙의 전도자요 정치인은 국민을 위해 희생하여 봉사하는 것이 본질이요. 공무원은 국민의 손과 발이 되는 것이 본질이요. 경제인은 기업가치를 통한 개인의 부와 사회적 활성을 만드는 것이 본질이요. 근로자는 주어진 근로에 최선을 다하여 일하는 것이 본질이요. 의사는 최선으로 환자를 치유하는 것이 본질이요. 군인은 나라를 지키는 것이 본질이며축구선수는 축구를 잘하는 것이 우선 본질이요..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본질이요. 농부는 농사를 잘 짓는 것이 본질이요. 어부는 물고기를 잘잡는 것이 본질입니다. 지금 주어져 있는 내 책임과 의무에 정당하게 부끄럼 없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의 본질입니다.
바보가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전혀 할 줄 모르고 신경쓰지 마라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본질이 왜곡되어 가고 변질되어 가는데 그것이 본질이라고 믿고 있고 주장하며 그리고 왜곡되어 부패되어 썩어가는 줄도 모르고 정당화 하고 그리고 그런 것이 고착화 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영성 있는 설교와 기도보다는 현란한 프로그램 만들기에 급급하고 기업인이 깊이 있는 제품개발보다는 삼류 장사치 보다도 못한 상술로 돈벌이에 급급하고, 정치인들은 국민들 위에 군림 하여 국민을 업신여기고 권력을 누리고, 자신의 명예욕, 출세욕에 나라의 안위와 국가의 안전을 헌신짝처럼 패댕기 치고, 공무원들을 권위의식과 기득권 이기주의로 자신의 밥그릇 챙기기에 혈안이고, 비정규직 보호를 부르짓으며 정작 자신들의 배부른 밥그릇은 철밥통으로 지키는 기득권의 대기업 공기업 귀족노조들, 어린학생들 수백명이 죽어가도 내 자식이 아니라고 놀러가다 죽은 아이들 국민 세금으로 무슨 보상금이냐고 악플을 스스럼 없이 올리는 익명의 대다수들 등등,,,, 우리의 삶의 본질을 벗어나고 벗어난 본질을 다시금 합리화 시켜 새로운 본질로 만들어 가는 우리사회의 수많은 사례와 현상들이 지금 이시대병든 서글픈 우리의 자화상일지도 모릅니다.
가마솥에 미지근한 물에 개구리를 넣어두면 평안히 헤엄치며 유유자적 합니다. 그리고 서서히 불을 지펴서 물 온도를 높혀도 개구리는 그저 편안하니 즐겁게 노닙니다. 그러다 시간을 두고 서서히 물 온도가 높아지면 거기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결국에는 삶아 죽습니다.
가마솥의 개구리가 유유자적 즐기고 있지만 결극은 그 가마솥에서 삶다 죽어가는 것이 본질입니다. 단지 가마솥의 개구리는 그 본질을 부정하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거기서 나와라 그러다 나중에 삶아죽는다” 하면 “아 이렇게 미지근 하고 따뜻하니 좋은데 왜 나오라고 하는거야!” 개구리는 펄쩍 뛰고 성을 냅니다.
우리 사회가 지금 그렇습니다.
앞서 말한 본질과 정의를 언급하면 길길이 날뜁니다. 누군가는 목회자에 대적한다 하며 극렬히 저주합니다. 어떤 단체들은 서울광장, 여의도를 대규모로 점령하여 붉은띠 깃발을 휘두르고 나라를 뒤집을 듯이 자신들의 극단적 이기심을 위하여 단체행동을 합니다. 철도를 멈추고 심지어 학교,병원을 닫아버리기도 합니다.
절대적 부패는 누구나 압니다. 갑자기 뜨거운 물에는 개구리도 절대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미지근한 곳에 따스한 곳에 들어가있는것은 곧 이어서 뜨거움이 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잘 모릅니다. 아니 알면서도 애써 외면 해버립니다.
나의 희생이 있어서 우리의 희생이 있고 그리고 사회의 아름다운 희생이 있습니다. 나의 양보가 있어서 우리의 양보가 있고 우리 사회의 양보의 미덕이 있습니다. 나의 솔선수범과 배려가 있어 우리의 솔선수범과 배려가 있고 우리 사회에 남에 대한 솔선수범 배려가 번집니다. 사람의 삶에서 이것이 본질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만의 아름다움입니다.
너는 양보해라 나는 못한다. 너네는 가라 우리는 못간다. 너네는 대한민국 사랑해라 우리는 원정 출산가서 우리손주 미국 시민권 얻을 란다. 네 자식은 군대보내라 난 아들 불쌍하고 시간이 아까워 군대 빼련다. 너네는 밑바닥 생활해라 우리는 상류층 하련다. 너희 비정규직 한달 100만원 벌어 살어라 우린 연봉 1억인데 더 받을란다. 너희 공휴일 일해라 우린 주5일근무에 월차,연차,각종 수당이란 수당 다 받고 모든 공휴일 거기에 각종 창립일 등등, 다 쉬련다. 당신들은 쌀 한가마니 12만원 받아라 우린 고급 수입농산물 먹으련다....
사회 전반에 썩은 본질을 두고 부끄러워 하거나 돌아보기는커녕 그 썩어가는 것이 진짜 본질인줄 제대로 착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곧이어 뜨거워져가는 솥단지 안에서 좋다고 날뛰는 개구리가 남의 일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우리사회에 올바른 가치관과 사람다운 도덕관점 그리고 진실된 본질이 그득히 흐르는 시대가 와야 됩니다. 탐욕대신에 양보가 중오대신에 사랑이. 이기심 대신에 큰 배려가, 몰염치한 것보다는 염치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심을 잃지 않는 진실된 보편타당적인 가치관들이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 잡아야 됩니다. 부끄러운 것을 부끄러운줄 알고, 탐욕을 탐욕으로 앎으로써 큰 죄의식을 느끼고, 나 하나의 내 조직의 극단적 이기심 보다 그 조직과 사회적 본질을 제대로 깨닳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것이 없는 사회, 그런 흐름이 없는 세상은 사람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강점기, 6.25전쟁 한민족사에 있어서 수많은 양민이 찔려 죽이고 침탈자들에 의해 수많은 젊은 부녀자들이 강간살육 당하고, 심지어 국가 왕비가 학살 강간당하는등, 나라와 민족이 숱하게 갈기 갈기 찢기고 망한 것이 지난 우리 역사의 교훈입니다. 그 한 맺힌 피눈물의 역사가 뼈저리게 그것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와중에도 호위호식하며 인간말종의 모습의 살아온 인간들도 많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합리화 시켜 또 다른 본질로 왜곡 시켰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올바른 가치관의 본질을 되찾지 못하면 그 혹독한 역사의 아픔이 가마솥에서 서서히 삶아 죽어가는 개구리 같이 또다시 되풀이 될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식들 그리고 미래의 자손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물려 주어야 하는지요?
우리가 참다운 본질을 잃어버리고 이기심과 분열만을 일삼는 다면 우리는 아마도 지금까지 겪었던 그 무엇보다도 훨씬 더 비참한 역사를 만들지도 모릅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 볼일입니다. 사회전반에 깔려있는 갈등과 이기심은 그 본질을 버리고 외면한 대가입니다.
올바른 삶을 위해, 그리고 밝고 맑은 참다운 사회와 나라를 위해, 정말 사람 살만한 사회, 차라리 경제적 풍요는 덜 할지라도 정신과 육체가 맑고 건강한 세상을 풍요로운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어가기 위하여 지금 부터라도 참다운 본질을 작은 것 하나 하나 부터 되새겨 볼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