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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학박사 정현석 칼럼
16-12-27 허리디스크
허리디스크
2016년12월22일
지난 몇 개월은 오십삼년 살아온 저의 인생에서 육체적 아픔이 가장 큰 시간들 이었습니다. 출근길 운전대를 붙잡고 아픈 허리통증에 몸을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기도 하고, 하도 통증이 심하여 신호 대기중에 차에서 내려서 허리를 숙이고 자세를 바꿔보기도 했습니다.
잠시만 서있어도 왼쪽엉덩이 위쪽 엉치쪽으로 파고 드는 아픔에 그야말로 이마에서 진땀이 납니다. 회사에서 집까지 한 사십분 거리를 어거지로 걷고 집 호수공원둘레를 한 시간에 걸쳐 추가로 걸어보면서 통증을 이겨보려고도 했고 얼마전 워크샵하는 날에는 통증을 참느라 생전처음 진통제를 한꺼번에 네알씩 먹어 보기도 했습니다.
오십 평생에 병원이라고는 몇 년 전 축구하다가 무릎이 꺾여 연골이 찢어져 무릎관절수술을 받아 사나흘 입원한 것이 전부였던 제가 이 지독한 허리 통증으로 대전의 한 병원에 8일간 장기입원(?)도 해봤으니 참으로 힘든 몇 개월 이었습니다.
누워 있으면 그 통증이 좀 덜하다가도 일어서거나 앉게 되면 위에서 짓눌리는 압력감에 눌리는 통증이 허리부터 좌측 엉치를 시작으로 허벅지 그리고 정강이 까지 내려옵니다.
머리를 숙이는 등 자세를 조금 바꾸자면 그 통증은 배가 되고 온 몸이 통증으로 신경이 곤두서버립니다.
허리 가운데쪽 즉 좌측 요추 3,4번 사이 디스크가 밖으로 흘러나와 터져 좌측 밑으로 흐른 상태에서 거기에서 대퇴부 엉치를 지나는 신경들을 누르고 있는 형국이니 좌측 하부 통증이 극심한 상태가 된 것입니다. 거기에다 엉덩이 꼬리뼈와 허리뼈 요추5번 사이 우측에서는 그 중간에 디스크 핵이 다닳아 없어져 뼈와 뼈가 가까이 붙어 있는 상태 즉 협착이 되어 있어서 그쪽 통증또한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MRI 화면상태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만신창이가 된 제 허리를 설명해주는 의사표정이 나이도 아직 창창한 사람이 참 걱정스럽다는 표정입니다.
“아니 이정도면 통증이 극심하여 걷지도 못할 텐데 그동안 뭐하셨어요, 이거 이대로 방치하면 중풍환자처럼 걷는 것은 고사하고 대소변 받아내야 해요. 허참! ”
“에고 어쩌다 이리 됐을꼬!“
MRI상태가 어쨌든 간에 좀 통증이나 없으면 견디련만 몸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픔 때문에 모든 생활과 삶이 엉망이 되버렸습니다.
세삼 말해 무엇 하겠습니다까 마는 별다른 아픈 것 없이 평범한 일상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또 고마운 것인지 느낀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사람몸이 이렇게 별거 아닌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아플 때마다 절감하는 요즘 시간들입니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모두 내게는 평범했던 것들. 차를 타고 내리고, 회사잔디밭 걷는 것 등의 일상들, 그저 편히 앉을 수 있는 방바닥 까지 그 모든 것들이 허리통증이 심하니 모두다 그림의 떡입니다. 저것들이 언제 내게 부담없이, 아픔 없이 맞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입니다.
결국 이 아픔을 참다 참다가 내일 왼쪽 흐른 디스크. 즉 터져나와서 신경을 짓누르고 있는 흘러내린 디스크을 제거하는 허리내시경 수술을 받으러 안양의 한 신경외과 병원에 입원합니다.
“에고 어쩌다 이리 됐을꼬!”
지난 몇 개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 내 이 몸뚱이는 누구를 원망할 수 있을런지요.
어쨌든 아직 젊다면 젊은 오십대 초반인데 일반적으로 나이들어 60대후반 이나 또는 70~80대나 찾아오는 허리협착증까지.. ‘도대체 나는 이 허리아픔과 고통이 지금 내게 왜 찾아왔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면서 지난 인생의 내 삶을 되돌아 보았습니다. 결국 내린 나의 결론은 ‘몸은 뿌린대로 거둔다’ 라는 진리를 이 허리 아픔을 통하여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 제게 허리 통증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1980년 10대에서 20대 초반까지 농업학교시절에 학교 농장 전공생을 하면서 학교수업은 거의 참석하지 못하고 학교 농장 재배장에서 그야말로 5~6년간 작물을 심고 캐고, 화분을 분갈이 하며 옮기고 작업하며 계절따라서는 수십번씩 한번에 수백톤에 달하는 배양토를 삽 하나 가지고 혼합하고 채로 쳐서 저장하는 소위 몸으로 때우는 일로 몸이 혹사되었습니다.
거기다 방학 때나 혹은 시간이 날때 마다 쉴틈도 없이 길게는 한달 이상씩 건설현장에서 숙식하며 건설 현장 아르바이트로....
그리고 군시절 산악 레펠 조교로 하루에도 수차례 직각레펠 하강 시범으로 허리가 많은 무리가 갔습니다. 스물 여덟 되던 해 때였던가는 그당시에도 허리통증이 심하여 살던 성남 집근처 한 정형외과 병원에서 허리 CT촬영을 하고 허리디스크제거 수술일정까지 잡았다가 어머님의 반대로 결국 수술을 취소하고 어머님께서 구해주신 허리에 좋다는 각종 약초나 비법등을 먹거나 챙긴 때문인지 그 뒤 많이 좋아져서 지금껏 별 탈 없이 잘 지내 왔습니다.
1994년 서른 살의 나이에 지금의 FM애그텍을 창업하여 초창기 제품 퇴비 발효제 ‘FM’ 품목을 거의 다 수작업을 통하여 만들었는데 한 10년 가까이 제품을 만드느라 참으로 많은 삽질 그리고 허리를 굽히고 수많은 힘든 노동을 하였지요.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적이라 눈앞에 해야 될 일이 있거나 처리할 것이 있으면 허리가 끊어지건 말건 집어던지고 확확해치우는 성격이라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허리가 무리가 되든지 말든지 앞뒤 안가리고 많은 일들을 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후로도 초창기 음성공장부터 지금의 오송 본사까지 대여섯 번 공장을 신축하거나 증축할 때 돈을 아낀다고 상당부분 험한 일들을 직접 해치우느라 허리가 참 많이 무리 하였습니다.
게다가 삼십대 초반에는 한 십여년 한 달에 두 세번 등산을 한답시고 무박2일 또는 2박3일 일정으로 30여kg 가까운 배낭을 짊어지고 한번에 수십km씩 백두대간을 종주하다시피 산에 다녔고 매주말에는 거의 30여년 축구 동호회에서 주말마다 축구시합 하러 다녔으니 참으로 지난 몇십 년 허리가 주인 잘못 만나 죽어나자 빠졌던 것 같습니다.
아픈 통증에 허리를 부여잡고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 보니 ‘몸은 뿌린대로 거둔다’는 이 말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때론 급한 성질에 때론 어쩔 수 없이, 때론 내 인생살이가 허리가 아프던 말든 그렇게 일하고, 또 그렇게 뛰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룬것도 많고 또 다른 부분에 남부럽지 않은 건강을 가졌습니다.
이 아픔이, 이 통증이 어쨌거나 살아온 내 인상의 흔적입니다. 아픔은 있지만 또 하나 내게 주는 훈장일지도 모릅니다. 아프지만 자책하지 않고, 그리고 살아온 제 인생을 비관하지 않고..
대신에 앞으로의 남은 삶에서 이제 좀 자제하고 무리하지 말라는 경고등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인생이 무엇이든지 다 잘하고 성공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빚과 어둠이 있듯이, 지금껏 잘해온 내 인생의 빛 가운데 이 허리디스크의 통증은 하나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이 그림자 또한 나의 인생의 일부분이니 받아드려야 겠지요.
그리고 인정해야 되겠지요. 단 앞으로 인생과 삶은 좀 더 자중하고 진중하게 가야 하겠지요.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왼쪽허리통증이 나를 짓누르고 있어요. 이 칼럼을 읽는 모든 분들 늘
아프지 말고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2016년12월22일
지난 몇 개월은 오십삼년 살아온 저의 인생에서 육체적 아픔이 가장 큰 시간들 이었습니다. 출근길 운전대를 붙잡고 아픈 허리통증에 몸을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기도 하고, 하도 통증이 심하여 신호 대기중에 차에서 내려서 허리를 숙이고 자세를 바꿔보기도 했습니다.
잠시만 서있어도 왼쪽엉덩이 위쪽 엉치쪽으로 파고 드는 아픔에 그야말로 이마에서 진땀이 납니다. 회사에서 집까지 한 사십분 거리를 어거지로 걷고 집 호수공원둘레를 한 시간에 걸쳐 추가로 걸어보면서 통증을 이겨보려고도 했고 얼마전 워크샵하는 날에는 통증을 참느라 생전처음 진통제를 한꺼번에 네알씩 먹어 보기도 했습니다.
오십 평생에 병원이라고는 몇 년 전 축구하다가 무릎이 꺾여 연골이 찢어져 무릎관절수술을 받아 사나흘 입원한 것이 전부였던 제가 이 지독한 허리 통증으로 대전의 한 병원에 8일간 장기입원(?)도 해봤으니 참으로 힘든 몇 개월 이었습니다.
누워 있으면 그 통증이 좀 덜하다가도 일어서거나 앉게 되면 위에서 짓눌리는 압력감에 눌리는 통증이 허리부터 좌측 엉치를 시작으로 허벅지 그리고 정강이 까지 내려옵니다.
머리를 숙이는 등 자세를 조금 바꾸자면 그 통증은 배가 되고 온 몸이 통증으로 신경이 곤두서버립니다.
허리 가운데쪽 즉 좌측 요추 3,4번 사이 디스크가 밖으로 흘러나와 터져 좌측 밑으로 흐른 상태에서 거기에서 대퇴부 엉치를 지나는 신경들을 누르고 있는 형국이니 좌측 하부 통증이 극심한 상태가 된 것입니다. 거기에다 엉덩이 꼬리뼈와 허리뼈 요추5번 사이 우측에서는 그 중간에 디스크 핵이 다닳아 없어져 뼈와 뼈가 가까이 붙어 있는 상태 즉 협착이 되어 있어서 그쪽 통증또한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MRI 화면상태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만신창이가 된 제 허리를 설명해주는 의사표정이 나이도 아직 창창한 사람이 참 걱정스럽다는 표정입니다.
“아니 이정도면 통증이 극심하여 걷지도 못할 텐데 그동안 뭐하셨어요, 이거 이대로 방치하면 중풍환자처럼 걷는 것은 고사하고 대소변 받아내야 해요. 허참! ”
“에고 어쩌다 이리 됐을꼬!“
MRI상태가 어쨌든 간에 좀 통증이나 없으면 견디련만 몸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픔 때문에 모든 생활과 삶이 엉망이 되버렸습니다.
세삼 말해 무엇 하겠습니다까 마는 별다른 아픈 것 없이 평범한 일상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또 고마운 것인지 느낀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사람몸이 이렇게 별거 아닌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아플 때마다 절감하는 요즘 시간들입니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모두 내게는 평범했던 것들. 차를 타고 내리고, 회사잔디밭 걷는 것 등의 일상들, 그저 편히 앉을 수 있는 방바닥 까지 그 모든 것들이 허리통증이 심하니 모두다 그림의 떡입니다. 저것들이 언제 내게 부담없이, 아픔 없이 맞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입니다.
결국 이 아픔을 참다 참다가 내일 왼쪽 흐른 디스크. 즉 터져나와서 신경을 짓누르고 있는 흘러내린 디스크을 제거하는 허리내시경 수술을 받으러 안양의 한 신경외과 병원에 입원합니다.
“에고 어쩌다 이리 됐을꼬!”
지난 몇 개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 내 이 몸뚱이는 누구를 원망할 수 있을런지요.
어쨌든 아직 젊다면 젊은 오십대 초반인데 일반적으로 나이들어 60대후반 이나 또는 70~80대나 찾아오는 허리협착증까지.. ‘도대체 나는 이 허리아픔과 고통이 지금 내게 왜 찾아왔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면서 지난 인생의 내 삶을 되돌아 보았습니다. 결국 내린 나의 결론은 ‘몸은 뿌린대로 거둔다’ 라는 진리를 이 허리 아픔을 통하여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 제게 허리 통증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1980년 10대에서 20대 초반까지 농업학교시절에 학교 농장 전공생을 하면서 학교수업은 거의 참석하지 못하고 학교 농장 재배장에서 그야말로 5~6년간 작물을 심고 캐고, 화분을 분갈이 하며 옮기고 작업하며 계절따라서는 수십번씩 한번에 수백톤에 달하는 배양토를 삽 하나 가지고 혼합하고 채로 쳐서 저장하는 소위 몸으로 때우는 일로 몸이 혹사되었습니다.
거기다 방학 때나 혹은 시간이 날때 마다 쉴틈도 없이 길게는 한달 이상씩 건설현장에서 숙식하며 건설 현장 아르바이트로....
그리고 군시절 산악 레펠 조교로 하루에도 수차례 직각레펠 하강 시범으로 허리가 많은 무리가 갔습니다. 스물 여덟 되던 해 때였던가는 그당시에도 허리통증이 심하여 살던 성남 집근처 한 정형외과 병원에서 허리 CT촬영을 하고 허리디스크제거 수술일정까지 잡았다가 어머님의 반대로 결국 수술을 취소하고 어머님께서 구해주신 허리에 좋다는 각종 약초나 비법등을 먹거나 챙긴 때문인지 그 뒤 많이 좋아져서 지금껏 별 탈 없이 잘 지내 왔습니다.
1994년 서른 살의 나이에 지금의 FM애그텍을 창업하여 초창기 제품 퇴비 발효제 ‘FM’ 품목을 거의 다 수작업을 통하여 만들었는데 한 10년 가까이 제품을 만드느라 참으로 많은 삽질 그리고 허리를 굽히고 수많은 힘든 노동을 하였지요.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적이라 눈앞에 해야 될 일이 있거나 처리할 것이 있으면 허리가 끊어지건 말건 집어던지고 확확해치우는 성격이라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허리가 무리가 되든지 말든지 앞뒤 안가리고 많은 일들을 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후로도 초창기 음성공장부터 지금의 오송 본사까지 대여섯 번 공장을 신축하거나 증축할 때 돈을 아낀다고 상당부분 험한 일들을 직접 해치우느라 허리가 참 많이 무리 하였습니다.
게다가 삼십대 초반에는 한 십여년 한 달에 두 세번 등산을 한답시고 무박2일 또는 2박3일 일정으로 30여kg 가까운 배낭을 짊어지고 한번에 수십km씩 백두대간을 종주하다시피 산에 다녔고 매주말에는 거의 30여년 축구 동호회에서 주말마다 축구시합 하러 다녔으니 참으로 지난 몇십 년 허리가 주인 잘못 만나 죽어나자 빠졌던 것 같습니다.
아픈 통증에 허리를 부여잡고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 보니 ‘몸은 뿌린대로 거둔다’는 이 말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때론 급한 성질에 때론 어쩔 수 없이, 때론 내 인생살이가 허리가 아프던 말든 그렇게 일하고, 또 그렇게 뛰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룬것도 많고 또 다른 부분에 남부럽지 않은 건강을 가졌습니다.
이 아픔이, 이 통증이 어쨌거나 살아온 내 인상의 흔적입니다. 아픔은 있지만 또 하나 내게 주는 훈장일지도 모릅니다. 아프지만 자책하지 않고, 그리고 살아온 제 인생을 비관하지 않고..
대신에 앞으로의 남은 삶에서 이제 좀 자제하고 무리하지 말라는 경고등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인생이 무엇이든지 다 잘하고 성공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빚과 어둠이 있듯이, 지금껏 잘해온 내 인생의 빛 가운데 이 허리디스크의 통증은 하나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이 그림자 또한 나의 인생의 일부분이니 받아드려야 겠지요.
그리고 인정해야 되겠지요. 단 앞으로 인생과 삶은 좀 더 자중하고 진중하게 가야 하겠지요.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왼쪽허리통증이 나를 짓누르고 있어요. 이 칼럼을 읽는 모든 분들 늘
아프지 말고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FM AGT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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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7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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